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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마리/ 후나란

 부정하고싶었던 진실에 확답을 줘버린 죠르노나 미스타가 밉기도했지만, 평생 소식도 몰랐을 바에야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과 원망에 망가진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괜스레 나쁘지않은 기분이란 착각이 들기도했다. 지금을 정상적으로 살고있다는건 전혀 아니지만.  부챠라티가 있을적에는 오후의 순회가 끝나면 나란챠와 함께 집을 돌아가는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그도 그럴게, 아마 부챠라티가 나란챠와 처음 만났을 때였다. 대뜸 멀쩡한 가정을 포기하고 갱이 되어버린 청소년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랄게 떡하니 존재하고있을리는 없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아마 쓰레기통의 근처에서나 자리를 잡고있다 다시 부챠라티에게 잡혀 돌려보내지는 일 뿐이었을테니. 아마 처음엔 부챠라티에겐 비밀로 해달라며 몇주정도만 얹혀사는걸로 부탁받았던것같기도 하고, 열여섯 짜리 꼬맹이에게 그런 부탁을 해놓고 연상이라는 점을 우겨대는것도 꽤 우습기는 했지만말이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함께 들어살게 된 후에는 딱히 이대로 함께 살고있어도 전혀 문제가 될것같지도 않아 방을 나눈체로 그때까지도 같은 집에서 살고있었던것이다. 이른바 '동거' 정도일까, 처음 짐을 늘여놓던 모습을 회상하기라도 했는지 그는 저도 모르는새에 스스로의 입술을 곱씹고있었다.

 

 

 

 처음에는 이불따위를 어디에선가 받아오더니, 곧 좋아하는 게임기나 즐겨보는 잡지들을 방안에 늘여놓기 시작했다. 돈이 들어온 날에는 나란챠를 위해 아동용 완구를 구입해보기도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나란챠가 폴포의 시험에 합격해 부챠라티의 팀에 들어왔던 날에는 라디오 카세트를 그의 방에 하나 들여놓아주기도했었다. 밤새 같은 노래만 틀어댄 덕에 일주일도 못가 그만 홧김에 부숴버린 기억까진 덤으로 따라오는건가, 지금 생각해보면 나란챠에겐 사과해야할일 이었던것기도하고. 붉으스름했던 눈가에 기어코 차고넘친 눈물 한방울이 볼가를 따라 흘러내렸다. 바깥이 그리 차갑지 않음에도 붉어진 볼은 어렴풋이 스스로에게 감정을 서술해주는것만 같았다. 생각만으로 눈물을 흘리는건 이제 그만할 수 있을줄로만 알았는데, 오랜기간 연습했던 결과가 실패였음을다시한번 깨닫고 한심함만 더해져가는것같았다. 언제가 되어야 나는 나의 옛 동료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지않을 수 있는 날이 오는걸까, 이럴거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상대가 곁에 있을때에 물어라도 볼걸그랬다. 등에 닿는 의자의 등받이가 딱딱했던게 지금은 왜이리도 서럽게 느껴지는지, 주문해뒀던 피자만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도망치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때쯤이면 포장이 끝날텐데, 손목에 둘러져있는 시계의 얇은 바늘만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리던 때였다. 카운터에서 울린 경쾌한 벨이 울리는소리, ' 주문하신 피자 나왔습니다! ' 그를향해 소리친 점원의 목소리에 후고는 간신히 피자를 낚아채듯 받아들고 피자가게를 나왔다.  

 

 

 

 오늘따라 왜이리 울적한 기분이 드는지, 평소에도 들떠있었다거나 즐거웠던건 아니지만 이리 다운되어있었던 적은 스스로 드문일임을 깨닫고있었다. 무려 그 죠르노가 회의의 결론격으로 본인에게 출근금지령까지 내려주었으니, 그정도로 안좋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던거겠지. 후고는 대충 신경쓰인다는 표정으로 스스로의 얼굴을 매만지고있었다. " 딱히 변화가 있었던것같진 않은데, " 어제도, 그저께도. 저번주도, 저번달도 그랬다. 스스로 생각하기엔 제법 정상적인 삶을 살아오고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길의 모퉁이를 돌며 보인 유리창에는 버려진 강아지나 다름없는 몰골의 그가 이를 응시하고있었다 . 왜 이런 표정을 짓고있는걸까, 거니는 거리마다 깔끔하게 닦인 유리에 자꾸만 얼굴이 비춰지는것이 그에겐 거슬릴따름었다.

 

 

 주변의 풍경에 맞춰 붉은 지붕을 얹은 한 주택의 앞에, 판나코타 후고는 드디어, 라는 느낌으로 그 앞에 섰다. 보통의 바지주머니가 있을곳에 보란듯이 나있는 구멍덕에 열쇠는 피자박스와 함께 그의 손에들린 가방에서야 발견되어, 검은 철문에 있는 열쇠구멍에 겨우겨우 끼워졌다. 찰칵, 문이 열리고서야 드러나는 집안. 이게 정말 그의 집안인가? 잘 정리되어있을것만 본래의 이미지와는 전혀 매치가 되지않는 옷가지들로 난잡해진 바닥이며, 큼직큼직한 완구들이 그 사이를 매워 더욱이 혼잡해보이기만했다. 물건들이 놓이지 않은곳은 부엌으로 향하는 길, 집의 2층으로 연결된 현관에서 좀 떨어진 계단, 지나다니기엔 문제가 없도록 물건으로 길을 터놓은 계획적임을 보니 일부러임이 틀림없는 행동이었다. 주변을 몇번 둘러보던 그는 그대로 신발을 벗어두곤 현관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아직 남아있는 습관때문인지 신발을 향해 손을 뻗으려던 후고는 아차, 싶어 의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통은 반대가 아닌가, 오히려 어지러운 공간을 만들어내겠다는듯이 구는 그의 행위는 정상적으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란챠, 작게 읊죠리는 이름에는 서글픔이 더없이 묻어나와 보는사람으로도 하여금 우울하게 만들 수준이었다. 물건들 사이의 빈 공간이 만들어내는 작은 길을따라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겨 겨우 눈앞의 문고리를 잡아당긴 그가 방의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란챠 길가, 방문앞에 걸린 펫말에 적혀있는 이름이었다. 몇달씩이나 돌아오지않는사람의 방에 들어가기시작한것은 사실상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죠르노나 그녀석이 조직의 윗부분을 차지했으니, 나란챠는 아직 내가 따라가지않았던게 얄미워 돌아오지않는거겠지. 가끔 들어가 방의 바닥을 쓸거나, 찬장의 먼지 따위를 닦아내며 네가 돌아올자리를 마련해뒀었다. 방으로의 출입이 잦아진것은 네 장례식 이후. 거의 사라져가는 네 향기를 네가 좋아하는 물건들로 간간히 보충하듯 살고있었다. 오늘은 피자려나, 갓 구워진 마르게리따 피자를 방의 한가운데에 두곤 지그시 그 향이 퍼지기를 벽에 기대어 지켜보고있는 그였다. 조금 변태같아보이긴 하더라도 나름대로의 그리운 향을 그리는 하나의 위로 방법이었기때문에. 그러고보니 새삼스레 오늘 죠르노가 쥐어주었던 작은 롤리팝이 생각이났다. " 일본에서는 그런 날이었던가? " 할로윈,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노크를한 후 ' 사탕을 주지않으면 장난쳐버린다! ' 같은 시시껄렁한 문구를 이야기하곤 귀엽게 사탕을 뜯어가는 날이라고 한번쯤 들어 보았었던것같다. 이탈리아에는 할로윈같은 날은 존재하지않으니 문외한인 그에게는 알 방도가 없었다.

 

 

 그후 몇분을 더 생각해보아도 스스로 생각해봤자 답이 안나오는것은 당연지사. " 아냐 , 아니지. 원래는 조금 더 다른 의미가 있었던것같은데... " 고심끝에 후고는결국엔 서둘러 그의 방으로 돌아가 여러나라의 기념일 등이 인터뷰되어있는 잡지를 집어들었다. 파시오네의 거래구역은 국내뿐만은 아니었기때문에, 거래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깐족대기라도 해봐야한다며 떠밀리듯 구매했던 잡지가 이것이었다. 목차에 따라 페이지를 조금 넘기자 쉽게 발견될만한 이벤트, 대충 내용은 죽은자의 영혼이 살아돌아오는걸 돌려보내기위해 일부러 무서운 분장을 하는 날이라는건가. 게다가 사탕같은걸 뜯어내는 괴상한 풍습까지 가지고있는게 조금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문득 이런 날이 존재한다면 무언가를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특별한 날 , 나는 네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반갑게 맞이할 자신이 있는데. 조금은 낯부끄러운 이야기 같더라도 절반이상은 이미 진심이었다. 

 

 

" 나도 네가 돌아온다면 좋을텐데요.  "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이곳에 다시 와줄리는 없겠지. 그야 나는 그를 따라가지않은 '배신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에게는 그 만의 다른 소중한 존재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에대해 한가지를 생각해낼때마다 변명을 얹으려 드는 제 머릿속에서의 충돌에 조금씩 머리가 지끈거리는듯 했다. 빛이 눈가에 고인 눈물에 곁들어 반짝이자 게슴츠레 떠 빛이 잘 들지않는 눈동자에 아련함을 더해주었다. 금방이라도 울것같은 , 어쩌면 이미 가득차 흘러내리려하는 눈물을 닦아내려 제 옷소매로 눈가를 문질렀다. 서럽기도 하고, 네 방에 있으면 어째선지 얼마못가 어린아이처럼 질질 짜는 본인을 다른사람이 본다면 부끄럽겠지 같은 생각도 해보고 . 고개를 조금만 숙여도 중력에 이끌려 뺨을따라 아래로 흐르는 물방울이 결국엔 읽고있던 잡비위에 떨어졌다 . 잡치를 옆에 던져주곤 닦아내던 손은 결국 위치를 바꾸어 그의 얼굴을 가려주었다. 마법처럼 , 그 할로윈이라는 날처럼 .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 후고는 결국 무언가 포기한듯이 제 얼굴을 손으로 가린체로 훌쩍이기 시작했다. 원망 , 슬픔, 간절 , 긍정적이지 못한 이미지란 이미지는 다 들이다 부어 무거워짐 눈망울이 옷소매를 적시고있었다. 

 

 

 " 보고싶어요, 나란챠... "

 

 코까지 먹어가며 우는소리로 겨우겨우 이야기를 꺼냈다. 나란챠 , 나란챠 . 그 부르는 나란챠의 이름 외에 돌아오는 정적뿐인지라, 결국 눈물콧물 전부 쏙빼내겠다는듯이 목놓아 울기 시작하려던 때였다. 갑작스레 정적을 깨는 목소리. 

 

" 뭐야~ 오늘은 시끄럽게 우네 , 후고 . " 

 

누군가 있나? 그는 서둘러 고개를 들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를 재빨리 닦아내곤 주변을 마저 둘러보던 그는 순간 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눈 앞의 흐릿한 사람의 형상. 검은 머리카락, 주황색의 반다나, 나이에 안맞게 본인보다도 앳된 얼굴, 껄렁한 자세로 선 소년이 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것이었다. " 어쩔 수 없구만~ " 같은 소리를 하며 곧 제 어깨에 두른 팔, 온기는 과언일 정도로 촉감조차 제대로 느껴지지않는 미묘한 감촉. 이젠 환각까지 보는건가 싶어 눈을 몇번 깜빡여봐도 여전히 제 앞에서 자신의 등을 달래듯 쓰다듬어주고있는 소년만이 보일 뿐이었다. " 옳지옳지~ " 고개를 들어올린 후고를 보곤 해냈다는듯한 표정으로 기뻐하는 나란챠를 보니 무심코 였나보다. 닿을거라곤 생각되지않는 눈앞의 흐릿한 형상을 양팔로 꼭 끌어안았다. " 나란챠... " 눈을 꾹 감은체로 작게 속삭이곤 안는 시늉만을 부자연스럽게 하고있는 제 손을 거두어가려던 틈이었다. 

 

" 후고 , 너 내가 보여? " 

 

감았던 눈이 번쩍 트이는 순간이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것은 제가 두른 팔에 붙잡혀있는 소년이 어정쩡한 자세로 그를 내려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있는것이었다. " ...나란챠? " 헷갈릴레야 헷갈릴 수가 없는 사람, 지금 눈앞에서 댕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다름아닌 나란챠 길가였다. 이런 환각은 처음인데, 스탠드 공격인가? 당황스러움에 살짝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못했다. 그리고 곧이어 " 후고, 후고? " 빠져나가려는듯이 그의 팔을 잡고 몸을 앞으로 쭉 뻗던 소년은 무언가 포기한듯 한숨을 내쉬곤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 나란챠? " 들이밀어진 고개에 따라 뒤로 목을 내빼어보지만 등 뒤의 벽면이 그를 가로막았다. 곧장 가까이 마주한 눈동자, 상황도 상황인지라 체면을 차릴 여유따윈 있을리가 만무했다. 재빨리 두른 팔을 풀었음에도 가까운 거리, 숨은 쉬고있는것같음에도 그의 숨결은 전혀 닿는 감각이 없었다. 무심결에 감기려는 눈을 희미하게 뜨고는 가만히 이 상황을 파악해보려하길 잠시, 미묘한 감각과함께 눌리는 제 볼에 저절로 눈이 팍 뜨였다.

 

 

 

" ...나란챠? " 요리조리 눌린 볼에 미묘하게 어눌해진 발음으로 그는 상대에게 질문아닌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을 들은 소년은 되려 황당하다는듯이, " 후고~ 나 말고 누가있겠어? " 입술을 삐죽 내민체로 그의 볼을 마구 잡아댕겨대는것이다. 손가락에 닿는 감촉은 제로, 눈으로 보지않으면 만져지고있다는걸 눈치챌 수 없는 그런 수준의 투명한 감각들을 그는 느끼고있었다. 그렇다면 ' 유령 ' 인건가? 스탠드사의 공격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은 그렇게 결론지을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되었던간에 그는... 나란챠, 인건가?

 

 

 

 " 후고~ 너 또 울고있어. " 오목조목 찰흙이라도 만지듯 나란챠가 후고의 볼을 조물락거리며 이야기했다. 그제서야 눈치챘다는듯이 고개를 돌린 후고는 조심스레 나란챠의 어깨를 붙잡곤 떼어놓았다. 훌쩍이며 코먹는 소리가 한번, 억지로 참으려는듯이 구멍이 송송난 옷으로 얼굴을 닦아내듯 쓰는 후고를 나란챠는 입술을 삐죽이며 저지했다. " 후고가 울보인건 이미 다~ 들켰거든, 이런면에선 후고쪽이 바보아냐~? " 장난스럽긴 매한가지라도 제법 진지한 투 , 마치 오랫동안 지켜보기라도했다는듯이 이야기하는 나란챠의 이야기에 후고는 움찔,하고 놀라 그의 양 어깨를 붙들었다. " ...계속 보고있었어요? 언제부터? " 조금 착찹해진 표정의 후고와는 달리 누가봐도 ' 오호, 요것봐라 ' 의 표정을 짓던 나란챠는 곧 읏흥, 같은 콧소리를 내며 이야기했다. " 쭉~ 있었걸랑, 찾아왔었잖아? 내장례식." 정확히는 도중에 도망쳐버렸지만. 게다가 쭉이라니,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가며 후고 의 뺨을 붉혔다. 그간 제 옆에 붙어다녔던거라면 수시로 네 이름을 부르며 별 지랄을 해대는 추한 행동까지도 다 지켜봤을텐데. 대사를 인용해본적도 있었고,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수치스러운 일들이 많았긴했나보다. 그런걸 보고도 친구처럼 가까이 다가와줄 수 있는건가? 그래도 앞에 있는것이 진짜 나란챠라고 생각하니 어찌되어도 이젠 괜찮을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 ...나란챠 "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어깻죽지에 고개를 묻은 이가 작게 속삭였다. 분명히 닿아있음에도 공기로된 벽에 머리를 맞대고있는듯한 공허함, 그럼에도 그에게 닿고있다는 사실만으로 판나코타 후고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래그래~ 라는 느낌으로 어느정도는 허락해주는듯했으나, 곧이어 나란챠의 허리춤을 감싸안은체 바닥으로 밀어붙이는 후고의 행동에 나란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후고, 후고? " 그의 품안에서 얼굴을 느릿하게 부벼대며 그는 마치 베개라도 안고있듯 그를 감싸안았다. " 조금만.. 조금만 어리광부리게 해주세요, 나란챠.. " 그제서야 반항은 포기했다는듯 가볍게 후고의 머리를 쓸어넘거주며 나란챠는 이야기했다. " 하고싶은 이야기는? " 이에 대답하듯 후고가 속삭였다.  " 보고싶었어요.. 나란챠. "

 

 

 

 

 어찌저찌 감동의 재회를 했음에도 한참동안 방안에는 훌쩍이는 소리와 누군가를 달래는 소리밖엔 들리지않았다. " 후고~ 그만좀 울어 , 어리광은 조금만 부린다며? 아무리 듬직한 연상이라곤 해도 이제 슬슬 허리가 아프니까. " 장장 30분이 넘어가는 시간동안 본인을 껴안고서 울기만 하다니, 예전에는 그가 울 수 있는사람이라는것조차 몰랐던 때를 생각하면 가까워졌다면 가까워진 관계겠지만. 그래도 이대로면 언제까지 이대로 붙들려있을지 몰라 결국 나란챠는 후고를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 아침, 아침이 되면 놀아줄테니까 . 그러니까 이제 그만울어, 뚝! " 어린아이에게 호통치듯 이야기한 그는 꾸물꾸물 몸을 위로 움직여 축 쳐져있는 후고의 품안을 빠져나왔다. 고개를 끄덕이곤 걸음을 옮겨 세면대에서 겨우 눈물 콧물에 엉망진창으로 더러워진 얼굴을 씻은 후고는 곧장 나란챠에게로 돌아왔다. " 아침부터는 종일 어울려주는건가요, 나란챠? " 아까까진 그렇게 질질 짜놓고서 지금은 업무를 권유하는듯한 사무적인 말투, 허나 말투는 진지해졌다곤 해도 도통 가라앉을 생각을 않는 붉으스름한 얼굴이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 그래그래~ 잔뜩 어울려줄테니 오늘은 그만 쉬고 어서 자. 잠드는거 지켜봐줄테니까. " 어서 자라는듯 재촉하는 나란챠의 반응에 조금 머뭇거리던 후고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 같이 잠드는건 안돼요? " 엑, 같은 소리를 내며 고민에 잠기려는 나란챠를 두고 후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 오늘은 나란챠가 없으면 안돼요.. " 이 후로도제법 부끄러운 대사들을 읊어가며 어떻게든 나란챠와 함께 잠을 자야겠다는 확고한 의지에 나란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후고는 샤워만 끝내두곤 두 방의 사이로 걸어와 멈춰섰다. 어차피 내일부터는 휴가이니 업무따위는 뒷전으로 미루어 두고, 오랜만에 본인의 방에서 잠을 청하기로 결정한듯 이미 깔끔하게 정리된 시트를 한번 더 정리해두었다 . 두 침대모두 그리 작은 사이즈인것은 아니지만, 두명이서 잠을 자기엔 조금 버거워보이는 크기였기에 어느침대에서 잠을 청하던 다를바가없었다. 하지만 갓 구운 피자의 냄새로 가득찬 방안에서 둘이 청할 수 있으리라곤 도무지 생각되지않았기에, 가끔 향수에 젖어있는 용도로 만들어두는 향을 자면서까지 맡고싶지는 않았다. 무언가 결심한듯 이불의 한쪽을 걷어낸 후고가, " 자, 같이 잘까요 나란챠 " 누가보아도 뻣뻣한 자세와 설득력넘치는 부드러운 목소리의 부조화, 익숙하지않은것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는 제법 부끄러워보였다. " 정말 안비좁겠어? 나야 그렇다 쳐도 후고는... 앗, 뼈밖에 안남았네 " 심오한 표정으로 후고의 허리를 더듬거리던 나란챠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침대의 한쪽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불만이 있다는 표정의 후고였지만 어느쪽이냐고 한다면 확실히 행복해보이는 얼굴인듯 보였다. 한층 밝아진 얼굴이긴 했짐자 그간 웃음에는 얼굴을 거의 쓰지않았기에 굳어버린 얼굴근육은 제 멋대로 쓰임이 가능하진 않았다. 곧 나란챠의 옆에 자리를 잡은 후고는 나란챠에게서 시선을 떼지않고 나란챠의 손을 감싸쥐었다. 언제라도 빼낼 수 있을정도로 느슨히, 지금 보고있는것이 환각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눈을 감았다. " 옆에 있는거 맞죠? " 보이지않으면 아무것도 느껴지지않았기때문에, " 응, 옆에있어 " 두어번정도는 계속해서 눈을 떴지만, 몇달만에 그는 겨우 편히 잠이 들 수 있었다. 

 

 

 

 

 6시가되자 칼같이 울려대는 알람시계, 침대옆의 탁자를 몇번 더듬거리다 알람의 전원을 끄고는 가만히 잡혀있는 손의 끝을 응시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림자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지만 적어도 그의 손끝에는 다름아닌 나란챠 길가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자게해줄까, 색색대며 곤히 자는 모습을 보니 도무지 깨우고싶진 않았지만 언제끝날지모를 꿈같은 시간에 지체할 시간따윈 없었다. 약속은 약속, 아침부터의 오늘은 그에게서 빌려낸것이다 . 쥐고있던 손을 살짝 끌어당겨 그 손등위에 입을 맞추고는 짧게 아침인사를 했다. 본 죠르노, 밤새 쥐고있던 손을 놓고 커튼을 걷자 강렬히 내리쬐는 아침햇빛이 거슬리다는듯 웅얼대며 눈을 뜬 나란챠는 작게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했다 . " 얼마 못잔것같은데... 벌써 일어나려고? " 뒷목을 매만지며 옆의 시계를 쳐다본 나란챠는 피곤하다는듯이 눈을 비벼댔다. " 아침부터는 어울려주기로 했잖아요, 나란챠. " 일전의 수학교실처럼 고분고분한 말투에 나란챠는 오히려 으엑, 같은 표정으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 그래서 진짜 이 시간부터 뭘 하겠다고..? "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나란챠, 그도 그럴게 판나코타 후고야 일전까진 나란챠가 전혀 보이지않았겠지만 그는 유령이되어 주변을 떠돌고 있었으니까다. 특별한 일이 없는날의 기상시간은 적어도 7시. 한시간이나 일찍 깨어나서는 곧장 무언가를 하자고 재촉당하고있는것이었다. 

 

 

" ..그럼 아침을 준비하는동안 조금 더 자고있을래요? " 멋쩍은듯 옆머리를 긁적이던 후고는 탁자에서 딸기모양의 귀걸이를 양쪽 귀에 끼운 후에야 침대에서 완전히 일어섰다. 네아폴리스가 관광 도시라고는 해도 그곳에 이미 살고있는 사람으로서는 평소보다 특별한 풍경을 찾아나서기란 제법 쉽지않은일인지라, 얼마나 대단한 계획인지는 겪어보기 전엔 알 방도가 없었다. " 나는 음식같은거 못먹으니까 딱히 안 준비해줘도 괜찮아~ " 소리가 없으니 기척도 잘 느껴지지않았는지 단말마같은 비명을 지른 후고의 팔을 붙들고 나란차는 이야기했다. " ..알겠어요 " 부연설명이 필요하냐는듯 떠보는 나란챠에게 괜찮다며 짧게 미소를 지어보인 후고는 재빨리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그에겐 낭비할 시간따윈 없다는걸 증명하기라도하듯 부실한 아침밥이었지만 그는 나란챠가 부엌으로 나와 그것을 보기도 전에 전부 입에 털어넣어버렸다. 오늘이 아니면 하지않을일들, 너와 함께하고싶다는 마음만이. 

 

 

 

 그렇게까지 특별한 시작은 아닌것 같다만 첫 스타트는 쇼핑이었다. 영화관의 근처에서 영화를 예매해두고는 그 근처를 배회하며 완구든 패션용품인든 전부 사들여갔다. 입지 못하더라도 서로에게 어울릴만한 옷을 추천하고,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목도리까지 골라주며 월급을 다 털어버릴 마음가짐으로쇼핑에 임했다. 시간에 맞춰 보러간 영화는 로멘스 판타지. 남자둘이 보러갈만한 영화는 아니라지만 그런들 어떤가, 나머지들은 대부분이 로멘스이기도 했던지라 선정한 이 영화가 그나마 나은것이라고 할 수 있었겠더라. 두시간이 넘는 영화가 끝나로 난 후에서는 점심식사를 , 아침식사와 마찬가지로 먹지못하는 나란챠를 위해 대충 끼니만 해결한다는 느낌으로 허겁지겁 음식들을 집어삼키다 사례가들린 후고를 보았다면 아마 잔뜩 웃었을테다. 그 다음에는 도서관, 관광명소로 알려져있던 유적지나 꽃집따위를 다니자 시간은 어느덧 해가 지려할때즈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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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서, 이번엔 뭐할거야? " 여전히 거친 운전솜씨로 자동차를 몰고있는 후고의 옆에 앉은 나란챠가 물었다. 창문이 없어 자동차의 속도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바람을 맞으머 흩날리는 머리가 신호등의 정지신호덕에 조금 진정이되자 후고는 입을 열었다. " 이제는 바다로 가볼까해서요, 그.. 부끄럽지만. 나는 나란챠에겐 한번도 제대로 찾아가본적도 없고 . 오늘이 아니면 용기가 안나니까. 네가 곁에 있어주면 사과할 기회가 생긴것만같아서... " 목적지는 대충 나란챠의 장례식이 치루어진 교회가 세워져있는 바다겠지, 하지만 목적지를 밝혀준것 치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은 나란챠가 태클을 걸듯 이야기했다. " 너 , 그럼 전혀 다른방향이잖아? 이대로면 바다는 무슨, 건물밖에 안보일텐데. " 말 그대로, 바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자동차를 몰며 점점 한적한 곳으로 향하고있는것이었다. " 오늘이 아니면 할것같지않은 일을 할거니까요, 나란챠는 오늘 어울려주기만 하면 되는겁니다. " 제법 딱딱한 투로 이야기한 후고였지만 반응이 신경쓰이는지 눈대중으로만 힐끔힐끔 쳐다보며 나란차의 반응을 살폈다. 어느쪽이든 나란챠는 그다지 신경쓰지않는듯 보였지만.

 

 

 

 자동차를 몰아 도착한곳은 누가보아도 수상해보이는 건물, 입구에는 SPW재단이라는 글자가 떡하니 적혀있었다.  형태나 규모로 보아선 창고의 용도 정도려나, 후고는 나란챠를 데리고 곧장 건물안쪽으로 직행했다. " 계속 끌고다닐 생각이라면 뭐하는지정돈 알려주라 후고~ 이래보여도 책임감있는 연장자니까. 도망은 안간다고? " 나란챠는 불만스러운듯이 제 팔꿈치로 후고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고있었다. " 그게 아닙니다 나란챠, 설마 심한짓이라도 시킬까봐요. 단지 일종의 서프라이즈..라는 특별선물을 드리고싶었던것 뿐이에요. 게다가 몇달 후부터면 제쪽이 오히려 나란챠보다 연상이 될텐데, 연장자라고 들이밀어봤자 내년부턴 다른걸 앞세워야할걸요? " 어색해보이긴하지만 나름대로의 장난스러운 투로 이야기하는 후고였다. 건물의 내부에 신경을 쓸 틈도없이 곧장 건물의 가장 안쪽의 엘리베이터 승강장을 향해 망설임없이 발을 뻗었다. 뾰루퉁한 표정의 나란챠와 후고가 탄 엘리베이터가 도착한곳은 건물의 옥상, 평평한 바닥에 그려는 큼직큼직한 줄들 . 그리고 그 가운데에 세워져있는건 SPW재단이란 글씨가 박힌 헬리콥터였다. 한번 추락한 이후로 다시는 타지않기로 결심했는데, 후고는 남모를 불안을 제쳐두곤 자신보다도 훨씬 먼저 요상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헬리콥터의 앞으로 달려나간 나란챠를 위해 헬리콥터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 후고, 이거 지금 날 수 있어? " 조종석에 앉으려는 나란챠를 저지하고는, " 예, 그래도 나란챠가 운전하면 오늘을 넘기지 못할지도 모르니 헬기 조종사를 한번 불렀습니다. " 아앙? 같은 소리가 들렸던것같기도하고. 

 

 

 

 동료인 무롤로에게 건너건너 배운 헬리콥터의 운전솜씨로는 마찬가지로 오늘을 넘기지못할지도 모르기에, 죠르노가 고용해준 스피드왜건 재단의 조종사에게 헬기의 운전을 부탁하곤 둘은 그 뒷자석에 가만히 자릴 잡았다. " 좀 더 근사한 사람이었다면 좋았을텐데, 나란챠. 네 옆에 앉아있는사람이 나라는것에 영광스러움을 느끼지만.. 정말 내 곁에 있어도 괜찮겠어요? 조금 더 실체화가 된 유령이라면 그.. 다른사람이나... 보러가진않았나요? " 딱 떠올랐던 사람은 부챠라티나 아바키오 정도다만, 그 이름들을 지금 입에 올릴순 없을 노릇이었다. " 충분히 근사한걸-, 예전에는 너 좀더 뻔뻔하고 불같았던것같은데. 뭐 좋아, 궁금한게 있으면 대답해줄게. 창밖은 보고있을거지만~ " 흥얼거리며 떠오르는 헬기의 바깥을 주시하는 나란챠를 두곤 괜스레 가슴이 저릿해져오는것을 느꼈다. 죄책감인가? 그래도 이왕 얻어낸 질문의 기회를 허투루 쓸 순 없었다. " 계속.. 어디에 있었던거에요? ..나는, 네 영혼은 이미 날아가고 없다는 죠르노의 말밖에 듣지못했으니까.. 그 1주일간 로마에까지 갔었다면서요 , 나란챠. " 차분한 목소리와는 달리 표정은 쓰디쓴 약초라도 씹어먹은듯 잔뜩 인상을 구긴 후고가 헬리콥터의 안전벨트를 손톱으로 긁으며 물었다. " 그을쎄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대충 이런몸이 된지는 조금 됐어. 음식이야 먹을 수는 있지만 맛은 전혀 느껴지질않고, 몸안에 쌓이는 느낌이라 뱉지않으면 오히려 불편해지고. 중간 끊긴듯이 나타나기도했고.. 최근에 들어서야 겨우 사람같은 형체가 되었으려나~ 뭐 사람은 아니지만. 그치? " 사뭇 보기힘든 나란챠의 진지한 모습, 물론 장난스러운 어조 덕에 바보같은 느낌은 전혀 지워지지않았지만말이다. " 그 뒤로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어. 아버지가 계신 집도 근처까지는 가봤는데, 막상 들어가보려니 무슨 의미가 있지 싶더라고. 나 그런 고민 잘 안하는데~ . 조금 더 놀러다녀본 후에는 네 집으로 갔어. 죠르노가 잘 해주는가 싶은데도 네가 매일밤 울어대니까~. 예전엔 이렇게 울보였던 꼬맹이를 왜 못알아봤나 몰라. 아하하하. " 호쾌한 웃음소리까지 덧붙여가며 얍살스러운 웃음을 짓는 나란챠였다.

 

 

 

 목적지인 절벽위의 교회에 도착할때즈음에는 토마토처럼 새빨게진 후고와, 신난듯이 그런 후고를 놀려대는 나란챠가 있었다. 강한 바람과함께 착륙한 헬리콥터는 교회와는 조금 거리를 두고 착륙했다.  곧이어 두사람을 내려두곤 다시금 하늘로 떠올라 시야에서 사라진 헬리콥터는 마치 딱 의무만을 수행하고 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교회의 변두리를 따라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예쁜 화환들이 주변에 걸린 오목한 묘비하나가 교회의 근처에서 눈에 띄었다. 나란챠 길가, 묘비에 적힌것은 그의 탄생일과 안식일의 시간. 그것을 본 후고는 착찹한 마음만이 들었지만 아무렇지 않다는듯이 " 응, " 이라고 대답해주는 나란챠의 반응에 후고는 겨우 입을 열 수 있었다. 미리 구해온 국화꽃, 묘비와 그 앞에 서있는 나란챠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후고는 떨리는 손으로 묘비의 옆에 비치된 꽃병에 국화를 담았다. 

 

" 당신에게 사과하고싶습니다! " 

 

 후고는 그대로 허릴쫙 펴곤 대뜸 하늘을 향해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간 함께했던 일들, 그날 보트를 타고 함께 따라가지 않았던것에 대한 후회, 지금의 감정까지도 그, 판나코타 후고는 나란챠의 앞에서 꿋꿋하게 소리쳤다. 사과라고 하기보단 보고서와같은 여러가지 일들을 늘여놓는것같았다만, 그도 그럴게 그는 애초에 배신자가 아니었으니까다. 여하튼 그것 말고도 여러가지, 네 물건들을 헤집어놓았다던가 등의 사소한 일들까지 전부 늘여놓은듯 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틀어막힌듯이 소리가 나오지 않는 입을 후고는 창백한 얼굴로 더듬거렸다. 본인을 앞에 두고 계속해서 하고싶었던 말이 기억이나질않아서 전하지 못한다는것은 실로 애달픈 일임에. 울음을 머금은 목소리가 후고의 입에서 머뭇거리기를 잠시, 도무지 생각나지않는지 결국 고개를 숙이곤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미안하다는 이야기 말고도 더 많이 하고싶었던 말들이 있었는데. 그 좋던 머리가 왜 돌아가지않는지, 미안해 죽을것같은 표정을 지은 후고가 나란챠를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 좋아. " 

 

 짧게 들려오는 한마디. 울상이 가득한 후고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나란챠가 이마를 맞대며 이야기했다. " 용서해줄게, 네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야 원, 어느쪽도 바보밖에 없잖아~ 후고. " 어린아이를 달래는듯한 어조, 왠지모를 서글픔이 묻어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나란챠는 가만히 후고를 끌어안았다. 어린애는 어린애지, 갱이라는 거창한 직업타이틀을 달고있긴해도 품에 안긴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그 나이의 또래 그대로였다. 고개를 살짝 비틀어 콧잔등에 입을 맞춘 나란챠는 곧 후고의 넥타이를 손으로 붙든체로 몸을 뒤로 늬였다. 나란챠의 쪽으로 중심이 쏠리는것은 당연했고, 의외로 작게 폭신하는 소리말곤 전혀 들리지않았다. " 나란챠, 아픈건.. " 바닥을 겨우 짚은 후고가 가장 먼저 걱정한것은 그의 등 뒤, 포장된 도로도 아니니만큼 상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음에. 나란챠는 " 나 안아파. " 라는 간결한 대답만으로 후고의 이야기를 끊어버렸다. 가만히, 바람이 이는 절벽의 들판위에 누워 마주하는 이의 눈동자. 노을이 질때가 되어 푸르르면서도 화사한 빛이 시선이 닿는서로를 비추었다. " 눈 감아봐 후고, " 팔을 후고의 목에 두른 나란챠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숨만 쉬어도 닿을 거리, 본래라면 그런 표현이 알맞겠다 싶었지. 힘차게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는 일방적일 뿐이었다. 새삼스럽게도 이 상황이 그다지 로멘틱하게 보이지만은 않을거란걸 직감적으로 느꼈나보다,  둘중 그 어느쪽도 입가에는 미소가 떠있지않았다. 애원, 안타까움, 어쩌면 연모의 감정까지가 그들이 지금 드러낼 수 있는 표정들의 한계선이었다. " 나란챠.. 계속 보고있게해주세요, 지금이 아니면 안될것같아요. " 힘없이 그에게 애원하는 목소리, 중력을 따라 콧등에 맺힌 물방울들은 곧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물이 떨어진곳에는 자국 대신에 일렁이는 흔적이 나란챠의 일부분을 왜곡시켰다. 닿는 감각은 점점 흩어지기 시작하는 공기처럼, 사람의 형태만을 겨우 유지하고있는듯한 불완전한 존재같았다. 

 

 

 

" 돌아갈까. " 이젠 절벽에서의 시야와 거의 일직선에 위치한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린체 나란챠가 후고의 뺨을 쓸며 속삭였다. 이쯤되면 오래 있었던것도 같지, 나란챠의 진지한 얼굴이 사뭇 낯설게만 느껴지는듯했다. 말없이 그의 위를 덮고있던 몸을 일으킨 후고는 스스로의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며 입술을 곱씹었다. " 저녁은 마르게리따 피자로할까, 돌아가는길에 사러가자. " 온 시내에 널린것이 피자가게인데, 여기서부터 돌아가더라도 하나쯤이야 발견될테니. " 그럼 지금부터 먹으러 가볼까요, 불빛의 밀집도를 보면 아마 저쪽부근에 택시가 있을것같으니까.. 일어나기 힘들다면 업어줄게요 나란챠. " 바닷가를 비추는것은 등대말곤 없었다 . 그러니 마을의 불빛이 훤히 보일 수 밖에. 몸을 받쳐주려 감싼 어깨는 일렁여 당장에라도 흩어질것만같았다. 무언가 잘못된게 있었던건가? 해는 어느덧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 마을의 어지러운 불빛말곤 그 무엇도 그들을 비추어주지못했다. 

 

 

 손에 들린것은 갓 구워진 따끈따끈한 피자,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낮에 길을 나설때와 마찬가지로 널부러져있는 물건들이 보였다. 두사람의 집, 심지어는 문을 열고있는 동안에도 후고는 수시로 고개를 돌려 나란챠가 따라오고있는지를 확인하며 제법 귀찮은 관심을 쏟았다. " 그렇게 계속 보지않아도 계속 있는걸~ 오늘은 너랑 있기로했잖아. 후고,  " 확연하게 지쳐보이는 목소리, 나란챠는 본인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는것은 확실해보였다. " 나란챠, 오늘은 조금 일찍 잘까요. 우리? " 후고는 나란챠를 달래듯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진 쇼파로 끌어당겼다. 중간에 발이 삐끗해 제법 요상한 자세로 얽혀 쇼파밑으로 굴러떨어졌지만. " 지금 이대로 잠들면 나란챠와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잔잔한 목소리, 일체의 행동도 없이 둘은 작은 속삭임만을 주고받았다. " 항상 함께있었다고 이야기했는데도 도무지 네가 들어주질않잖아, 이 똥멍청이가. 후고도 이런면에서는 선생님이 필요하다니까. " " 어떤 선생님이요? " " 엄청 잘 가르쳐주는 선생님, 그래.. 너같은거. " " 그럼 제가 제 스스로를 가르쳐야하는 상황이 오는건데요 . " " 그럼 그렇게 하라지, 선생님 바보겠지만말야~ " 대충 이런 흐름의 담소를 나누며, 후고는 은근슬쩍 천장을 보고 뻗어있는 나란챠쪽으로 몸을 돌렸다. " 반짝이는 빛이 날아다니는것만 같네요, " " 무슨 이야기야, 반딧불이? " " 조금 다른 이야기같습니다만, 그 이야기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 후고는 손을뻗어 나란챠의 손을 감싸쥐었다. 어젯밤 침대에서 꼭 쥐고있던 이 작은손을, " ..지금이 아니면 잠들 수 없을것만같아요 , 나란챠. 내일 하고싶었던 말이 기억나게된다면 아침인사 대신에 속삭여도 괜찮겠습니까? " 우습다는듯이 코웃음을 한번 친 나란챠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그럼 내일 아침까지는 네가 잊어버린 이야기를 기억해내는거야, 굳이 무덤이 아니라도 나는 여기에 있고 . 사이좋은 친구처럼 굿나잇 키스라도 해볼까, 후고. " 별로 반항해볼생각은 없지만, " 보통 친구끼리는 키스같은건 안한다구요, 나란챠.. " 그래도 이제와서 후회같은걸 만들 순 없으니까.  " 오늘밤도 네 꿈을 꾸었으면 좋겠어요 , 나란챠 . 좋은 꿈 꿔요. " 판나코타 후고는 그대고 이야기를 끊어내고는 스스로를 위해서라는듯이 눈을 감았다. 아침이 될때까지, 오므린 손은 절대 펴지않으리라 맹세하며 . 잠이오지않는 밤에도 절대 감은 두눈을 뜨지않았다. 

 

 "  나란챠, 정말 좋아해요. " 

 

 아침이 오기전에 기억해낸 한마디, 잠이든걸까. 답은 들려오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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